조기 교육의 중요성이 점차 확산되면서 축구도 그 열풍에서 예외일 수 없었고, 더 나은 축구 환경과 문화를 갖춘 축구 선진국에서 배우고자 하는 욕심은 신드롬처럼 일기 시작했다. 그런 신드롬을 반영이라도 하듯이 대한축구협회는 지난 2002년 월드컵을 전후해 유망주들의 해외 유학이라는 프로젝트를 가동하기 시작했고, 최근에도 대한축구협회는 프랑스와 포르투갈 브라질 등과 계약을 체결하며 유망주들을 해외로 보내고 있다. 헌데 이런 축구에서의 조기 유학 신드롬이 일어나기 수년 전에, 축구 종주국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진출을 노리며 14세란 어린 나이에 잉글랜드로 향했던 선수가 있었다. 바로 23살의 청년이 되어 한국으로 돌아온 제주 유나이티드 FC의 이산 선수이다. TV 다큐멘터리인 인간극장과 모 항공사의 CF에 출연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었고, 2004년엔 잉글랜드 프로 리그 4부에 속한 브렌드 포트에 입단하며 잉글랜드의 프로 선수로 데뷔했었다. 축구 종주국에서 낯선 경험을 전해주고 있는 이산에 대한 관심은 높아져만 갔고, 첫 프리미어리거의 탄생이란 기대도 갖게 하였다. 비록 프리미어리거란 꿈을 못다 이룬 채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이산에 대한 기대는 높다. 8년 동안 잉글랜드의 유소년 시스템을 체험하고 그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으며 한 계단씩 성장해 나가던 이산의 참모습을 많은 팬이 궁금해 하며 기대하고 있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관심과 기대의 크기만큼 힘든 짐을 안고 있을 이산 선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듣기 위해 20일 제주를 찾았다. 두 차례의 연습 경기를 끝낸 이른 저녁, 제주 유나이티드의 숙소에서 만난 이산의 표정은 무척이나 상기되어 있었다. 반갑다며 손을 잡는 아귀의 힘에 한 번 놀랐고, 그 아귀의 힘과는 전혀 상관없이 천진했던 웃음에 다시 한 번 놀랐다. 그렇게 두 번이나 놀란 채 인터뷰는 시작됐고, 깊은 내면을 갖고 있는 이산 선수의 진실한 마음에 세 번째 놀라움을 느껴야 했다. | ||||
축구를 처음 시작한 특별한 동기가 있나? 특별한 동기 같은 건 없었다. 어릴 때 동네에서 축구를 하는 것은 좋아했지만, 초등학교에서 정식으로 축구를 배운 적은 없었다. 내가 육상 선수로 뛰었다는 얘기가 있는데, 그것도 사실은 아니다. 육상부에 속해서 육상 선수로 뛰지도 않았고, 축구도 마찬가지다. 중학교에 올라와서 담당 선생님의 권유로 그 해 4월 처음 축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친구들과 동네 축구를 한 것이 고작이었고, 정식 선수로 축구를 하기 시작한 것은 중동중학교 입학 후였다. 중동 중학교 1학년, 어린 나이에 잉글랜드로 떠날 결심을 했다. 어머니의 영향이 가장 컸다. 어머니는 내가 중동중학교에서 축구를 시작하자 기왕 축구를 배우려면 더 좋은 환경에서 배우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권유하셨다. 중동중학교 축구부에서 축구를 시작한 지 꼭 8개월 만에 잉글랜드로 떠날 결심을 했다. 사실 중동중학교에서 축구를 시작하고는 볼 트래핑 같은 기본기만 연습했었기 때문에 사실상 축구 경험은 없었다고 봐야 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그리고 잉글랜드로 떠날 결심을 하게 된 또 다른 이유는 축구 외에 교육이란 부분에 있어서도 소홀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영국이 아무래도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니까 중요한 언어에 대한 교육도 자연스레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했다. 결국, 내가 앞으로 하고자 하는 축구에 대한 부분과 그 외적인 외국어 교육에 대한 목표를 모두 충족시켜줄 수 있는 나라를 찾았었고, 그 나라가 바로 영국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중동중학교에서의 8개월이 참 행복했었던 것 같다. 뛰어난 기량을 보이며 주전을 꿰차서 경기를 뛰었던 것도 아니고, 남들보다 더 큰 주목을 받았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볼 트래핑 같은 기본기만 연습하고 경기를 지켜보기만 했었지만, 중동중학교에서의 그 짧은 8개월이 참 소중하고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잉글랜드에서의 축구와 생활을 어땠나? 어린 나이에 축구는 물론이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잉글랜드로 갔다. 처음에는 외로움이나 다른 부분에서 크게 힘든 점은 없었다. 그저 내가 배워야 할 축구를 가장 잘하는 나라 중 하나에 들어왔다는 사실만으로 기뻤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외로움도 느끼게 되었고 많은 부분에서 힘들었다. 특히 점점 더 힘들어지는 선수 생활을 경험할 때마다 그런 어려움을 많이 느꼈었다. 어린 시절 동네에서 친구들과 함께 공을 찰 때는 하나도 힘들지 않았었다.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공을 차며 뛰어다녀도 힘들기는커녕 하루종일 기뻤었던 것 같다. 직업이란 생각 없이 그저 즐기는 놀이로 축구를 해서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직업으로 축구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조금씩 힘들어졌고 이런저런 고민도 많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러면서 문화의 차이라는 것에 대한 어려움도 느끼게 되었고, 언어를 비롯한 여러 가지 생활에서 많은 고민을 느끼기 시작했다. ‘프로’라는 직업의식이 들어가면서 축구 외에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래서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많은 어려움이 함께 따라왔었던 것 같다. 솔직하게 말해서 다시 과거로 돌아가 잉글랜드에 가서 축구를 시작하라면 고개를 저을 것 같다. 당시 잉글랜드에서의 경험이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고 소중한 교육이었음은 분명하지만, 그 과정을 다시 밟으라고 한다면 아마 안 하겠다고 할 것이다. 잉글랜드에서 축구를 위해 투자한 8년은 나에게 무척이나 소중한 경험인 동시에 그 소중함만큼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 ||||
| 잉글랜드에서 여러 팀을 옮겼는데? 98년 잉글랜드로 건너가서 가장 처음 입단한 팀이 크리스탈 팰리스 U-14세 팀이었다. 당시 크리스탈 팰리스가 프리미어리그에 있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그 팀에서 잘 성장해, 프리미어리거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팀에 입단한 이후 팀의 재정 상황이 급속도로 나빠지기 시작했다. 감독과 코칭스태프는 물론이고 선수들과 구단 관계자들의 월급조차 제대로 지급되지 않고 있었다. 팀은 너무나 맘에 들고 좋은 점이 많았지만 불안한 재정 상태가 팀의 혼란을 가져왔고, 많은 지도자와 선수들이 팀을 떠나기 시작했다. 당시 U-14세 팀을 지휘했던 감독님도 팀을 떠나게 되었고, 나를 포함한 몇몇 선수들을 함께 데리고 나가셨다. 그 감독님을 따라 풀럼의 U-15세 팀으로 입단하게 되었다. 풀럼에서 축구를 본격적으로 배우면서 조금씩 기량이 향상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당시 풀럼에서 최전방 공격수로 뛰면서 최소한 스피드에 있어서만큼은 어느 누구에게도 지지 않게 되었고, 그 스피드 덕분에 ‘힘과 스피드’를 중요시하는 잉글랜드 축구 스타일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 이후에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의 유소년 팀에 입단했었는데, 당시 풀럼 U-15세 팀의 경기를 보았던 웨스트햄의 스카우터의 눈에 띄어 팀을 옮기게 되었었다. 당시 웨스트햄은 디비전 1에 속한 팀이었지만, 유스팀은 잉글랜드에서도 알아주는 명문팀이었다. 내가 웨스트햄의 유스팀에서 뛸 당시 유명한 선수들이 많았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수비수인 리오 퍼디낸드의 동생 안톤 퍼디낸드였다. 그 밖에도 훌륭한 선수들이 참 많았었다. 자연스레 주전 경쟁을 치열해 졌고, 16세가 되면 프로 계약을 해야 하는 시기였기 때문에 나는 앞으로 진로에 대한 새로운 고민을 해야 했었다. 프로로서의 첫 발은 브렌드 포트에서 내디뎠는데? 당시 웨스트햄에는 좋은 선수들이 많았었다. 유스팀 명문이고 좋은 선수들이 많다 보니 자연히 그 경쟁의 치열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프로로 올라가기 힘들었던 환경이었다. 물론 그들보다 더 뛰어난 기량의 우위를 보이며 프로 계약을 했어야 했지만, 솔직히 말해 당시 나에게는 그만한 실력이 모자랐다. 프로에 대한 진로를 고민하고 있을 때, 현지 코치가 나를 브렌드 포트에 소개해주었다. 웨스트햄의 치열한 프로 경쟁의 도전을 계속 할 것인지, 아니면 좀 더 안전이 보장된 브렌드 포트로 갈 것인지에 대한 결정을 내려야 했다. 결국, 브렌드 포트에서 도전을 하기로 했지만, 결과론적으로 그 결정은 아주 큰 실수였다. 브렌드 포트에 입단하자마자 팔 부상을 당해 3개월가량을 깁스를 하고 다녀야 했다. 물론 제대로 된 훈련을 할 수 없었다. 팔 부상이 나아갈 때쯤 조금씩 볼을 차며 공의 감각을 익히다가 이번엔 무릎 부상을 당했다. 그 당시에는 정말 절망에 가까웠다. 브렌드 포트에서 내 기량을 보이며 프로 계약을 했어야 했지만, 거의 8개월 가까이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이렇게 꿈이 무산되는 듯싶었다. 모든 게 웨스트햄에서의 과정을 이겨내지 못한 때문인 것 같아 정말 괴로웠다.당시 브렌드 포트는 나에게 1년 더 기회를 주겠다고 했었는데, 내 마음은 좀 더 큰 클럽인 셰필드 유나이티드 쪽으로 많이 기울어 있었다. 중간에 브라질 유학을 잠깐 다녀온 걸로 알고 있다. 유학이라고 하기는 뭣하다. 브랜드 포트에서 다시 셰필드 유나이티드로 옮기던 시기에 잠깐 틈이 생겨 브라질 축구를 경험하고 싶은 욕심에 3개월 정도 다녀왔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브라질에서의 축구는 잉글랜드의 그것과는 또 달랐다. 섬세하고 화려한 축구 기술들과 진정으로 축구를 즐길 줄 아는 브라질 선수들을 보면서 많은 것들을 느꼈었다. 셰필드 유나이티드에서의 생활은 어땠나? 경기 기록도 비교적 좋았는데? 브라질에 잠깐 다녀온 뒤, 곧바로 셰필드 유나이티드 2군에 입단했다. 당시 30경기에 출전해서 15골을 성공시켰었는데, 표면적으로는 나쁘지 않은 기록이지만 당시 상황을 비추어보면 그다지 뛰어난 기록도 아니었다. 당시 셰필드는 프리미어리그 승격을 목표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엄청나게 많은 선수를 2군에 모아 인재를 뽑고 있었다. 당시 셰필드에는 프리미어리그 명문팀에서 나온 선수들과 유럽 각지의 유망주들로 가득했다. 선수단 규모가 무려 60여 명에 이르렀고, 나는 그 중 하나에 불과했다. 이곳에서의 경쟁도 엄청났다. 그리고 2군에서 그 엄청난 경쟁률을 뚫더라도 1군에 올라가는 선수는 고작 한두 명에 불과했으니, 어찌 보면 경쟁이란 자체가 무의미했었다. 지금에 와서 하는 생각이지만, 당시 셰필드란 큰 클럽 말고 조금 작더라도 1군에서 활약할 수 있는 팀을 선택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만약 그랬다면 프리미어리그로의 진입은 조금 늦더라도, 1군 경기에 꾸준히 출장하며 나의 실력을 더 키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들기도 한다. 물론 그런 생존 경쟁을 이기지 못한 것은 나의 책임이다. 환경이나 이유를 탓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당시 내 선택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 것은 사실이다. | ||||
| 몸으로 체험한 잉글랜드의 유소년 시스템은 어떤가? 개인적으로 한국 축구를 경험한 적이 없어서 잉글랜드 클럽의 유소년 축구 시스템이 우위에 있다 어떻다는 말할 수 없다. 한국의 교육 시스템을 전혀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어려서부터 겪었던 잉글랜드 축구를 얘기한다면 기술의 연마나 전체적인 축구의 이해 혹은 전술적인 부분에서의 배움 보다는 주로 경기를 뛰는 것에 주력하는 경향이 짙다. 대부분 공 하나 던져주고 ‘게임 뛰어라.’라는 식이다. 이런 교육이 16세 이전까지 대부분을 차지한다. '잉글랜드에는 특별한 유소년 축구 시스템이 있다.'라고 하기보다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많은 경기를 뛰는 것에 주안점을 맞추는 것 같다. 축구의 전반적인 이론과 기술에 대해서는 16세 이후, 즉 프로팀과 계약을 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이전까지는 자유로운 상태에서 가능한 많은 경기를 뛰면서 축구의 가장 기본적인 감각 등을 배우는 것에 많은 부분을 투자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기본기라든가 특별한 교육은 없었지만 경기 자체를 많이 뛰고 여러 스타일의 선수와 부딪히는 많은 실전을 경험했다는 것이, 차곡차곡 쌓여 성장의 좋은 자양분이 된 것 같다. 그리고 기본기라든가 체력 같은 부분을 팀의 지도 아래 전체가 교육 받기보다는, 개개인이 스스로 연습하고 노력하는 스타일이다. 이런 부분을 ‘기본’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산 선수 이후 많은 축구 유망주들이 해외로 나갔는데, 대부분 국내로 돌아오고 있는 추세다. 해외에서 직접 경험했던 선수로 우리나라 선수들의 경쟁력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다른 나라에서 많은 경험을 하지 못해서 대부분의 나라에 대해 얘기하긴 힘들다. 하지만, 잉글랜드에서는 한국 선수여서 경쟁력이 쳐진다거나 하는 그런 인상을 받지는 않았다. 솔직히 얘기하면 잉글랜드 유소년 시스템에서 성장해 프로로 직행하는 비 잉글랜드 선수는 찾아보기 힘들다. 매우 특별한 기량을 보유하고 있고 같은 세대들을 훨씬 뛰어넘는 최고의 기량을 보유한 선수라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비슷한 선수들인 경우 프로 계약은 당연히 내국인 우선이다. 그리고 실제로 외국인 선수들이 잉글랜드에서 경쟁력을 갖춘다는 것 자체가 힘들다. 잉글랜드는 힘과 스피드를 너무 중시한다. 유럽인의 신체적인 구조에 최적화된 축구 교육에 힘을 쏟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브라질이나 남미 선수들의 개인기를 보고 축구 선수인 나도 혀를 내두를 때가 많았다. 어떻게 저런 나이에 저런 개인기가 가능한지 경이로울 정도였다. 하지만, 날고 기던 남미 출신의 어린 선수들도 그 잉글랜드가 원하는 시스템 속에서 살아남기는 쉽지 않은 것이었다. 잉글랜드 혹은 영국 출신의 선수들을 제외하면 그나마 낮은 확률로 프로에 들어가는 선수들은 대게 아프리카 계통의 유럽 선수들이 고작이다. 심지어 프랑스나 네덜란드 같은 주변 유럽국들의 유망주들도 통과하기 힘든 과정이다. 특별히 우리나라 선수들의 경쟁력이 떨어져서 빅 리그로의 진출을 하지 못하고 다시 국내로 돌아오는 것이라고 보기보다는, 각기 그 나라에 맞는 축구의 특성에 적응하지 못한 결과라고 보는 것이 옳다. 나라마다 고유한 음식이 있듯이 축구에도 저마다 색깔이 있다. 결국, 그 색깔을 잘 입히지 못하게 되면, 그 색깔이 얼마나 좋고 아름다운 것 인지와는 관계없이 다르다는 이유로 버려지게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어린 시절 잉글랜드로 갔던 지난날을 후회하나? (웃음)땅을 치며 후회하고 있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쉬움이 많이 남는 것은 사실이다. 잉글랜드에서 배우리라고 믿었던 축구의 전반적인 것들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아쉬움은 더 크다.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일찍 해외로 나가기보다는 국내에서 한국 축구를 좀 더 배운 후 나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만약 그랬다면 기본적인 한국 축구라는 틀 위에 잉글랜드라는 선진 축구를 좀 더 효과적으로 소화할 수 있었을 것 같다. 해외, 특히 잉글랜드 축구를 경험했던 선배의 입장에서 잉글랜드 조기 유학은 별로 권하고 싶지 않다. 다른 나라의 사정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오히려 선진 추구를 배우고 싶다면 여러 나라를 2~3년 간격으로 돌아다니면서 여러 축구를 습득하는 편이 더 좋을 것 같다. 브라질에 잠깐 갔었던 그 3개월이 개인적으로는 잊을 수 없는 좋은 경험이었다. 조기 유학은 그 나라 축구의 모든 것을 흡수할 생각이 아니라면 별로 권하고 싶지 않은 시스템이다. 그리고 내가 너무 일찍 서둘렀던 것은 아닌가 하는 후회는 분명히 있다. | ||||
| part.2-한국, 그리고 새로운 도전 한국으로의 복귀도 쉽지는 않았을 텐데, K 리그로 오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특별히 이유가 될 만한 계기 같은 것은 없다. 선수로서는 자신감이 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아직 내가 너무나도 많이 모자라기 때문에 더 늦기 전에 한국 축구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렇게 어린 나이도 아니지만 사실 많지도 않은 나이라서 아직 열심히 배우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국 축구를 배워야겠다는 목적이 가장 강했다. 영국에서 배울 건 다 배웠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영국보다는 한국 축구를 배우고 싶었다. 영국에서는 개인 문화가 강해 조직적인 축구의 어떤 것들을 배우기가 힘들다. 그런 점을 봐도 그렇고 한국에서 내가 새롭게 배울 수 있는 부분들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더 늦으면 아예 한국으로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몰랐기 때문에 K 리그에 뛰어들 생각을 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가능하면 세계 여러 나라에서 축구를 배우고 경험하고 싶다.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리그 같은 유럽의 다른 나라도 물론이거니와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혹은 호주 같은 나라의 축구도 배워보고 싶다. 물론 그 전에 내 기량이 그들의 리그에 적합하도록 향상되어야겠지만 앞으로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K 리그는 물론이고 한국 축구에 대한 경험이 거의 없다. 앞으로 한국 축구를 이해하고 배우는 것이 쉽지 않을 텐데, 각오는 되어 있나? 물론이다. 한국으로 돌아올 생각을 하면서 가장 많은 걱정을 하고 결심을 한 것도 바로 그 부분이다. 당연히 힘들다고 생각하고 있다. 잉글랜드에서 K 리그를 볼 기회도 거의 없었다. 잠깐씩 주요 장면들만 봤었다. 완전히 경험이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K 리그의 수준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월드컵을 통해서 본 한국 선수들의 기량은 분명 놀라웠다. 그리고 각 나라의 프로 리그는 그 나라에서 최고의 기량을 보유한 선수들이 모이는 곳이다. 당연히 선수들의 개인 기량이 높을 수밖에 없다. 사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수준보다 더 힘든 도전이 될 것이란 느낌이 든다. 그리고 제주에 온 지 열흘 남짓 되었지만, 선수들의 전체적인 스피드나 몸싸움에 놀라고 있다. 직접 겪어보니 내가 정말 부족한 것이 많은 선수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고 있다. 더 많이 노력하고 더 연습해야겠다는 욕심이 생긴다. 처음 접하는 한국 축구라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적지 않다. 하지만, 외국 용병이 들어와서 처음부터 한국과 한국 축구를 배우는 것보다는 내가 유리할 것 같다. 나는 그래도 토종 한국인 아닌가(웃음).겸손함을 잃지 않고 열심히 배우면서 최선을 다한다면 결국 한번쯤은 기회가 올 것이고 그렇다면 그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도록 철저하게 나를 준비할 생각이다. 처음이라 이것저것 어려움과 어색함이 많은데, 감독님과 여러 선배님이 잘 도와주셔서 무난하게 적응하고 있다. 특히 신병호 선배님과 함께 방을 배정받아 쓰고 있는데 정말 배울 것이 많은 선배님이다. 개인적인 기량도 물론 그렇지만,숙소 생활이나 경기 외적인 부분에서 배울 점이 많은 선배님 같다. 잉글랜드에서 8년 동안 축구를 배우면서 가장 자신 있는 점은 무엇인가? 또 반대로 보완해야 할 점이 있다면? 부끄럽지만 아직 장점 같은 건 없다. 아무리 봐도 온통 단점 투성이다. 굳이 거론하라면 스피드와 힘에는 조금 자신이 있다. 영국에서 가장 많이 배운 것이 그거니 어쩜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국에 와서 조금 경험해보니 우리나라 선수들도 못지않게 빠르고 몸싸움도 심했다. 내가 갖고 있는 장점을 더 극대화시키려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가장 큰 단점은 전체적인 전술에 대한 이해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잉글랜드에서 거의 전 경기를 포워드로만 뛰었다. 제주에서 첫 연습 경기를 윙으로 뛰었는데 사실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를 몰랐다. 나에겐 첫 경험이었다. 우리나라 선수들의 가장 큰 장점이 여러 포지션을 소화하는 멀티 플레이어가 많은 것인데, 이는 단지 멀티 포지션이란 장점 외에도 전체적인 전술 이해도도 높아지는 것 같다. 내가 꼭 배워야 할 부분이다. 또 지능적인 플레이에 대한 약점도 부인할 수 없다. 순간순간 변화하는 상황들에 대해 능동적이고 지능적인 대처가 좀 약한 편이다. 이 부분도 역시 꾸준한 반복과 훈련을 통해 극복할 수 있는 부분인 만큼 더 많이 노력해서 좋은 결과를 내고 싶다. 해외 축구를 더 배우고 싶다고 했다. 잉글랜드도 거기에 포함되는가? 물론이다. 다시 잉글랜드의 축구를 경험하고 싶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꼭 프리미어리그에 서고 싶다. 우선 못다 이룬 꿈인 프리미어리그에 다시 도전해서 그 꿈을 이룬 다음, 스페인이나 미국 브라질 호주 같은 곳에서 축구를 배우고 즐기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영국에서 너무 좋지 않은 날씨에서 운동을 계속했기 때문에 화창하고 따뜻한 날씨가 있는 나라에서 운동하고 싶다(웃음). | ||||
앞으로 올림픽 예선과 내년 본선이 열린다. 올림픽 대표팀에 대한 욕심은 없나? 당연히 욕심 난다. 선수의 가장 큰 꿈은 조국의 국가대표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당장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욕심을 낼 생각은 없다. 내 스스로 꾸준히 준비하고 열심히 하면 반드시 기회는 올 것이라고 믿고 있다. 당장은 대표급 선수들에 비해 부족함이 많겠지만, 최선을 다해서 꼭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은 욕심은 분명히 있다. 잉글랜드에서 흑인 백인들과의 경쟁에서도 살아남았었는데, 같은 한국인과의 경쟁에서 지면 어떻게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할 수 있겠는가? 우선 국내에서 가장 인정받는 선수가 되기 위해 급하지 않게 꾸준히 노력할 생각이고, 그렇게 노력하다 보면 국가대표의 꿈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올해 이루고 싶은, 혹은 앞으로 K 리그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사실 이번 시즌은 한국 축구에 대한 적응의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주전 경쟁이란 말도 건방지다. 물론 개인적인 야망은 많지만 아직 그런 얘기를 할 시기는 아닌 것 같다. 다만, 지금까지 축구 선수들과 다른 모습을 보이고 싶은 욕심은 있다. ‘영국에서 축구를 해서 다르긴 다르구나!’라는 말이 내가 앞으로 가장 듣고 싶은 말이다. 축구를 통한 경기력이란 측면에서도 물론 그렇지만, 다른 부분 생활이나 태도 인간성 같은 부분에서 다른 면을 많이 보여주고 싶다. 또, 최고의 공격수란 추상적인 욕심보다는 내가 가장 자신 있어하는 ‘스피드’에 있어서만큼은 한국 최고의 선수가 되고 싶다. ‘이산이란 선수가 스피드로 하는 축구에 있어서는 최고다.’라는 말을 듣는 것이 가장 최종적인 목표다. 마지막으로 ‘이산’이란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과, ‘이산’이란 이름에 기대를 하고 있는 팬들에게 한마디 해 달라 8년의 시간을 뒤로하고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축구 선수란 경기를 보러오는 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해야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때론 연예인처럼 팬들에게 경기장을 찾은 대가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 대가는 훌륭하고 박수받을만한 경기로 보답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앞으로 팬 여러분께서 경기장을 어렵게 찾은 그 대가를 돌려드리기 위해 부끄럽지 않은 경기를 펼치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관심을 받으며 잉글랜드에서 돌아왔지만, 제 스스로 가치를 입증하지 않으면 그리 많은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것이란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 축구에 적응을 하지 못했다는, 그래서 실패했다는 얘기는 절대 듣지 않겠습니다. 적응을 하지 못했다는 것은 결국 제 축구 실력이 거기까지인 것과 다름없으니까요. 힘들겠지만 주어진 문제들을 잘 넘어서서 많은 분이 기억하실 수 있는 선수로 남고 싶습니다. 아직 많은 분이 ‘잉글랜드의 이산’이라고 얘기하십니다. 하지만, 앞으로 ‘한국의 이산’으로 더 열심히 노력하고 성장해 ‘세계의 이산’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더 크게 더 높이 뛰어오르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축구팬 여러분의 많은 성원과 질책을 부탁드립니다. 식사도 못하고, 긴 시간 할애해줘서 감사하다. 앞으로 좋은 모습 기대하겠다. 인터뷰 내내 이산이란 어린 선수에게서 풍겨 나오는 짙은 향기 같은 것 때문에 즐거웠었다. 이제 23에 접어든 나이의 선수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침착하고 깊은 속을 보면서, 당장 보다는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선수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게다가 축구 선진국에서 8년을 있으면서 ‘자만’과 ‘이기’가 쌓였을 것이라는 것은 분명한 편견이었다. 또래 선수들이 갖추기 힘든 겸손함마저 갖고 있는 이산의 미래는 충분히 기대되는 것이었다. 8년이란 긴 시간을 머나먼 타국에서 홀로 싸웠던 이산. 새롭게 시작하는 그가 제주 유나이티드와 한국 축구에 얼마만큼의 공헌을 할 수 있을지 그래서 지난 그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할 수 있을지, 한국 축구에 첫 도전을 시작하는 이산의 발끝을 주목해 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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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ㅣ손병하, 강유리] bluekorea@eflamm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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